2009년 11월 18일
420년 전 사랑편지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임세권 안동대 사학과 교수 풀어 씀
1998년 4월 안동시 정상동 고성 이씨 선산에서 묘를 옮기던 중 관 안에서 미라가 발견됐다. 관 안엔 편지 한 통과 머리카락을 땋아 만든 미투리가 있었다.
1586년 6월 1일 31살 나이로 세상을 떠난 남편 이응태(1556-1586)에게 부인이 보낸 편지다. 부인 이름에 대한 기록이 따로 없어 '원이 아버지'에서 이름을 빌려와 '원이 엄마'라 이름을 붙였다.
이 편지를 처음 봤을 땐, 요즘 편지려니 했다.
편지가 쓰인 때를 보고 나선, 조선에 대해 내가 오해를 했음을 느꼈다.
지금 감성과 차이가 없다. 애초부터 사랑은 이렇게 애틋하고 애달프고 간절했던 거다. 더욱 놀라운 것은 표현이다. 표현조차 옛 문구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적어도 사랑에 있어선 사람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게다.
아들을 기르던 원이 엄마는 뱃속에 아들을 둔 상태였다. 두 아이를 홀로 기르는 것도 막막했겠지만, 임을 보낸 적막함이 더 컸을 게다.
원이엄마가 쓴 편지. 사진 <안동대박물관>
하고픈 말이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당시엔 종이가 귀했다. 종이 한 장이 전부였을 수도 있다. 아끼기 위해서 빼곡히 썼다면 낭만적이지 않다고 불평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낭만인 게다. 그런 현실적인 필요성과 애절함의 결합.
무덤엔 편지 뿐만 아니라 미투리도 함께 있었다. 미투리는 남편이 병석에 누운 뒤 삼기 시작한 것이다. 삼과 머리카락을 섞어서 꼬았다. 삼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정성을 보태기 위해서일까. 알 수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무덤에서 남편 이응태와 부친이 주고받은 편지다. 즉 한 집에 살지 않았다는 뜻으로 처가살이를 했다는 증거다. 원이 엄마는 남편을 '자네'라 불렀다.
임란 전까지만 해도 남녀는 지위가 비슷해, 재산 분배도 차별이 없었다 한다. 남녀 지위에 높낮이가 생긴 것은 임란 뒤다. 조선을 통틀어 남녀차별이 심했던 시대라 한다면 조선에 대한 편견이자 왜곡일 터다.
원이 아빠는 1556년(명종11년)에 태어나 1586년(선조19년)에 죽었다. 31세란 젊은 나이에 전염병에 걸려 앓다 죽었으니 그네 삶은 짧았다.
살아남은 원이 엄마 삶이 순탄하진 않았을 것 같다. 홀로 두 아이를 키워야 했다. 6년 뒤인 1592년엔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과연 원이 엄마는 임진왜란 때까지 살아있었을까. 살아있었다면 전쟁통에 어떻게 살았을까.
원이 아빠를 사랑했던 마음이 이후 사는데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여기서 생각나는 시가 정호승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사람들은 사랑을 모른다
자기 마음대로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너는 어찌되든지
나만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너는 무엇을 원하는지
너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 보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만
내 마음대로 네가 되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다가 죽어야 하는데
너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죽어야 하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한다
나를 살리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을 알지 못한다
너를 살리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원이엄마 편지에서 나타난 절절함을 생각하면 원이엄마가 제대로 삶을 이어나갔을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원이엄마에겐 이미 두 아이가 있었다. 그게 변수다.
원이 엄마의 사랑은 살아남은 우리들 상상력을 자극한다.
2005년 안동시는 4월 4일 원이 엄마 아가페상을 만들었다.
2006년 9월엔 원이엄마를 주제로 한 소설 <능소화>가 발간됐다.
2007년 11월 내셔널 지오그래픽엔 'Locks of Love'란 제목으로 원이엄마 편지가 소개됐다.
2009년 3월 고고학 저널 앤티쿼티(ANTIQUITY) 표지는 원이엄마 편지였다.
2009년 10월엔 오페라 <원이 엄마> 초연돼 매진됐고, 2010년 3월에 <그대와 영원히>(감독 임진평)라는 제목을 달고 영화가 개봉한다. 윤소이와 박재정이 주인공이다.
벌써 국내외에서 많은 이들이 원이엄마를 주목한다. 조선시대 사랑 편지가 신기해서일까. 아니면 그같은 절절한 사랑이 사라져서일까.
사랑은 짧고 우리 삶 또한 짧다.
420여년전 사랑 편지를 통해서 사랑에 위안을 받고 삶에 위안을 받는다. 사랑은 짧지 않고, 삶도 짧지 않다. 원이엄마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출처 : 오마이뉴스 블로그 "자전거처럼"
# by | 2009/11/18 14:29 | 이런 저런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